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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

금정산성(동문과 남문)

금정산성(동문과 남문)

  • 주   소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일원
  • 문   의 051)888-6875
  • 이용시간10:00 ~ 17:00
  • 해설사근무금요일,토요일,일요일

금정산성은 길이 18,337m, 성벽 높이 1.5m~3m 정도로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광대한 성곽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금정산성의 성벽은 금정산의 능선을 따라 지형의 굴곡과 높낮이에 맞춰 쌓았고, 높은 봉우리들을 이용하여 봉우리 자체가 성벽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금정산에 언제부터 성을 쌓았는지 알 수 없으나 고대에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 때부터 이미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며, 또 일부의 유구(遺構)를 두고 신라시대에 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산성은 1703년(숙종 29)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667년(현종 8) 현종이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을 불러 들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계책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성이 신라 때부터 있었던 성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정산에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국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러 차례 대두하였으나, 1702년(숙종 28)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청에 의해 1703년에 준공하였다.

당시 완공된 성은 둘레 9,011보, 높이 1척으로,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을 둔 방대한 산성이었다. 특히 서문에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적대(敵臺)를 성문 양쪽에 설치하였으며, 서문 오른쪽에는 3개의 아치형으로 된 홍예수구(虹霓水口)를 설치하여 성안의 물이 밖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의 경우 서문임)

그 뒤 1707년(숙종 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다.

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는데, 평상시에는 중군(中軍), 승병장(僧兵將), 군기감(軍器監), 도계도(都計導), 군뢰(軍牢), 문직(門直) 등의 직책을 가진 자와 군병 등의 상비군 및 인근 사찰의 승려가,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등 3개 읍 소속군과 3개 읍 소재 사찰의 승려들이 군사로 차출되어 방어토록 되어 있다.

금정산성은 일제강점기에 관아건물 들을 비롯하여 많을 시설물이 파괴, 몰수당하였다고 한다. 부산시에는 연차적으로 성곽, 성문, 망루 등 성곽 시설을 보수, 정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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