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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책갈피 하나를 꽂다 - 보수동책방골목

오래된 시간을 걷는 서점 골목여행

평점 4.9
조회 22,685

시간을 되돌아가는 길
마음에 책갈피 하나를 꽂다, 보수동책방골목

갈수록 바빠지는 삶. ‘빨리 빨리’를 좇다 보면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리기 좋은 곳, 보수동책방골목으로 가보자!

부산 중구 보수동에 위치한 보수동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조성된 곳이다. 이북에서 피난 온 어느 부부가 박스를 깔고 각종 잡지와 헌책 등으로 노점을 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종전 후 부산으로 온 많은 피란민들이 국제시장에 정착하여 힘든 삶을 살던 시절,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책을 구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노점의 헌책방은 성황을 이루었고 차츰 다른 피란민들이 가세하여 하나둘 서점이 늘어난 것이 지금의 책방골목이 되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은 입구 풍경부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난다. 간판의 글씨체며 켜켜이 쌓여있는 책들이 지나온 세월을 보여준다. 자동화된 차가운 기계의 감촉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디지털 시대에 한줄기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을 전해주는 듯하다.

가게마다 보유한 책이 워낙 많다보니 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린 책들이 좁은 골목 양편을 차지하고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마음의 양식이었을 중고서적과 빳빳한 표지 자랑하며 비닐에 곱게 싸인 신간까지 보수동의 골목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책만 가득할 것 같은 골목 중간쯤에 가파른 계단길이 보인다. 보수동책방골목과 벽화마을을 이어주는 계단이지만 그보다 ‘설정샷’ 장소로 더 유명한 곳이다. 각자 책 한권 들고 한 계단씩 차지하고선 무심한 척 한 컷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연히 집어든 빛바랜 책 속에서 어린 시절을 발견할 수 있는 곳, 그 기억과 함께 아련한 흑백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보수동책방골목이다. 다리 뻗을 공간도 없이 살아야 했던 고단한 삶의 현장에 오롯이 피어났던 지식에 대한 열망은 부족했던 환경 속에서도 책방골목을 형성했고, 부산 사람들은 그 공간 속에서 배움의 시작을 열었다.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낸 보수동책방골목만의 문화가 책과 공존하며 지금도 그 생명력을 더해간다. 골목골목 빼곡한 책들을 바라보다 문득 마음 닿는 책 한권 구매해보는 것도 좋겠다.

뛰어가던 발길 멈추고, 잠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보수동책방골목을 걷는 여행자의 마음에 네모 책갈피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