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은 도시 부산. 동래구와 금정구, 북구에 넓게 걸쳐 있는 금정산은 부산의 여러 산 중에서도 맏형이다. 해발 800m 고당봉을 중심으로 산등성이가 부산 중심부로 이어지면서 부산의 근간을 이룬다. 사방에 4개의 성문을 가진 금정산성이 있고 신라 고찰인 범어사를 품고 있다.
만덕고개길은 금정산 남쪽에 위치한 옛길이다. 만덕터널이 생기기 전 동래와 구포를 이어주던 유일한 길이다. 상인들이 보따리 짐을 지고 동래장과 구포장을 오가던 산길이라 도적떼가 많았던 모양이다. 만 명이 무리를 지어 올라가야 도적을 피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만능 고개'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의 '만덕고개'가 '만능 고개'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만덕고개길 아래로 터널이 2개나 뚫리고 지하철까지 놓이면서 이제는 굳이 오를 필요가 없어진 길. 하지만 요즘 만덕고개길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멋진 야경과 구석구석 숨어 있는 다양한 볼거리 덕분에.
1. 만덕고개 누리길
만덕 1터널 입구 정류장에 내리면 오른쪽으로 곧장 만덕고개 누리길이 시작된다. 나무 데크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울창한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방에서 보이는 진한 초록에 두 눈이 금세 시원해진다. 풀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고 잔잔한 숲 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힌다. 주변의 모든 것이 불과 몇 분 전까지 머물렀던 도심의 풍경을 까맣게 잊을 만큼 생경하다.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다. 금정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동래구과 북구의 경계지점인 굴다리에 닿고 여기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만덕터널 입구 정류장에서 북구 재활용품 선별장까지 거리는 4.5km 정도.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2. 카페 만덕고개길436
만덕 1터널 입구에서 만덕고개 누리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숲속에 숨어 있는 카페가 나타난다. 주소를 그대로 이름으로 만든 '만덕고개길436'이다. 만덕고개길에 살았다는 달토끼를 모티프로 만든 카페는 무엇보다 정원이 눈에 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앉은 공간에 야외 테이블이 듬성듬성 놓여 있어서 마치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을 오롯이 품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카페 만덕고개436의 매력 포인트다.
조명이 불을 밝히는 밤에는 로맨틱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기에 충분하다. 도심 속에서 이렇게 자연 친화적인 카페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찾아갈 가치는 충분하다.
3. 금강대 옥불사
카페 만덕고개 436을 출발해 1km 남짓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금강대 옥불사를 만난다. 입구로 들어서면 포장이 안 된 숲길이 나오고 이내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경사의 끝에 금강대 옥불사가 자리하고 있다.
십이지신이 수호하는 경사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경내로 들어간다. 가파른 산세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건물들을 두르고 있는데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눈에 띈다. 금강대 십일면 관세음보살 마애불이다. 6m 높이의 돋을새김 석불로 11개의 얼굴 모습을 나타냈다.
마애불 앞에 서면 발아래로 동래는 물론이고 멀리 장산까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절집 건물들이 일반 사찰과 사뭇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차분한 마음으로 잠시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다.
4. 쉼터
만덕고개 누리길 산책로는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아이들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경사라 크게 힘들거나 숨이 차지는 않는다. 그래도 산행에 익숙하지 않다면 산책로 중간 중간에 마련된 쉼터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 된다.
쉼터에 서면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도심 풍경이 보일듯 말듯 아스라이 보인다. 큰 도로에서 불과 몇 백 미터 올랐을 뿐인데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자동차 길을 따라 지나갈 뿐. 고요한 숲길을 나 홀로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꽤나 매력적이다.
5. 만덕고개 누리길 전망데크
옥불사에서 쉼터를 지나면 이제 끝이 보인다. 이번 여행의 종착점이자 목적지인 만덕고개 누리길 전망데크가 코앞이다. 깊은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옆이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곤 숨어 있던 도심 풍경이 영화처럼 촤르르 펼쳐진다.
이 멋진 포인트를 놓칠 리 없다. 친절하게 전망데크를 만들어 두었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세워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아찔하다. 데크 위에 서서 산 아래를 굽어보니 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센텀시티가 보이고 그 뒤로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왼쪽으로 동래구, 오른쪽으로 연제구와 부산진구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장산과 배산, 황령산도 보인다. 땀을 흘리며 한 시간 남짓 고갯길을 걸어온 보람이 비로소 느껴진다.
해가 질 무렵에 맞춰 만덕고개 누리길을 오른 덕분에 부드러운 햇살이 도심 속으로 스며들다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멋진 일몰을 제대로 만났다. 도심 속에서 부품처럼 바쁘게 움직일 땐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풍경이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데크 주변으로 몰려든다. 두 손을 꼭 잡은 연인.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까지. 이제는 해가 지고 도심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린다. 산이 많은 부산에는 멋진 전망대들이 많지만 만덕고개 누리길 전망데크도 그들 못지않다. 걸어 와도 한 시간. 차를 타면 불과 10여 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요즘 인기가 뜨겁다.
어둠이 내려앉고 도심의 건물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회색빛 도시에 푸른 기운이 도는가 싶더니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붉은 불빛이 창백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엔 바다향이 묻어 있다. 머리 위에 뜬 초승달이 전망대 주변을 환하게 비춰준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만덕고개 누리길은 밤이 되면 굉장히 어둡다. 가로등이 없기 때문에 손전등이 필요하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혼자보다 일행과 함께 오르길 추천한다.
이용안내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153-8
휴무일
연중무휴
운영요일 및 시간
매일
이용요금
무료
교통정보
도시철도 4호선 미남역 11번 출구 → 버스 33-1 환승 → 만덕터널입구 정류장 하차, 도보 30분
도시철도 4호선 미남역 11번 출구 → 택시 이용 1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