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발발 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일본은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노동착취 및 인권을 유린했다. 탄광 노무자, 군인, 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 만주 등지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혹독한 굶주림과 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함께 기억하고 널리 알리자.
‘일본 땅 와보니 배고파 못살겠네. 배고파 죽겠는데 그 말만하면 몽둥이를 맞았네.’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지는 내레이션, 저벅저벅 걸어가는 하얀 그림자. 4층 전시관의 시작인 기억을 터널을 지날 때 울컥 솟구치는 감정을 절제하기 쉽지 않다. 식민지 조선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강제동원의 정확한 개념과 실체를 보여준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의 희생양으로 가족과 생이별 할 때 어떻게 그 발걸음이 떨어졌을까. 전쟁터로 내몰린 남편이 간직한 건 무사귀환에 대한 바람이 한 땀 한 땀 수놓인 허리띠 하나, 그리고 소집영장. 당시의 유물과 사진자료는 일제강제동원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 주고 있다.
모형 전시실이 있는 5층의 전시관에서는 일제강제동원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탄광, 막장, 노무자 숙소와 자료, 그리고 일본군 위안소.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을 떠나 온 조선인들이 일제에 감금당한 채 기나긴 어둠의 세월을 견뎌낸 곳. 몸 한번 편히 뉘지 못하고 햇볕 한줌 없는 그곳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분들이 눈에 밟히는 공간이다.
일제의 점령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강제 동원된 인원도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마을단위로 인원을 정해 할당량을 채우도록 압력을 가했고 결과적으로 대상 연령 이하인 어린 사람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 던져져 강제 노역을 당한 어린 청년들, 지나가는 배를 보며 하염없이 되뇐 한마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무리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수많은 조선인이 작업 중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유해를 찾은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습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머나먼 타국에 있다.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평안히 잠드시길 빌어보자.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용안내
주소
부산광역시 남구 홍곡로320번길 100
전화번호
051-629-8600
홈페이지
https://www.fomo.or.kr/museum/kor/Main.do
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운영요일 및 시간
화~일/09:30 ~ 17:30(17:00 이후 입장불가)
이용요금
무료
교통정보
도시철도 2호선 못골역 1번 출구 → 마을버스 남구9 환승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하차
버스 134 석포초등학교 하차, 도보 10분
마을버스 남구9 – 유엔평화기념관‧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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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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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티켓
다른 관람객들을 위해 역사관 내에서는 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