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늦은 밤 부산항에 입항했던 외국의 선원들은 산 높은 곳까지 별처럼 반짝이는 화려한 야경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아름다운 불빛들이 피란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움막과 판잣집인 것에 한 번 더 놀랐다고 한다.
그 집들은 세월이 흘러 지금 부산의 모습이 되었다. 부산하면 누구나 멋진 바다와 해변을 떠올리지만 일제 강점기 수탈을 위한 항구로, 피란민들의 임시거처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곳이 부산이기도 하다.
화려함 뒤에 가려진 역사의 모습을 찾아가 본다면 부산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소막마을은 소의 막사가 있었던 곳으로 부산 사람에게도 생소한 곳이다.
일본은 개항 이후부터 쌀뿐만 아니라 소가죽도 많이 수탈해갔고, 많은 소가 이곳에서 길러지고 도축되어 일본으로 보내졌다. 해방 이후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인구 50만이던 부산은 전쟁 이후 88만 명으로 늘었다. 갈 곳이 없던 피란민들은 해방 이후 비어있던 이곳 소 막사까지 찾게 되었다.
소 막사 한 칸의 규격은 폭 2.5m, 길에 4m로 약 4평. 이 한 칸이 소 막사의 규격이다.
이 한 칸 한 칸에 나무판을 벽 삼아 살다가 시간이 흘러 시멘트 벽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골목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의 좁고 빽빽한 골목, 집들의 모습은 예전 막사의 형태에서 조금씩 개조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한 사람이 채 지나가기도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예전 소 막사 지붕의 모습과 환기구로 쓰이던 작은 창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피란민들은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짐들을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피란민들은 임시 거처로 움막이나 간단한 막사를 지어 생활을 했다. 처참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희망과 기대는 어느새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렇게 모여 살던 곳이 지금의 소막마을이 되었다.
소막마을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1919년 북한에서 동춘 면옥으로 시작해 흥남철수 후 우암동에 자리 잡은 내호냉면이다. 10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이곳에서 부산 최초의 밀면이 만들어졌다. 당시 냉면의 원재료인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미국의 원조 물품 중에 밀가루가 많았고,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 지금의 밀면 밀냉면의 시초가 되었다. 밀면은 부산의 향토음식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의 피란민에 의해 만들어진 애환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소막마을을 둘러보고, 밀면을 맛본다면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아직도 피란민 1세대가 살고 있는 소막마을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담겨있는 마을이다.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역사와 조금은 특별한 부산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우암동 소막마을로 가자.
이용안내
주소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번영로 40-1
휴무일
연중무휴
운영요일 및 시간
매일
이용요금
무료
교통정보
버스 134, 23, 26, 68, 138-1, 168 남부중앙새마을금고 하차 도보 3분